프라랑 매거진 · 향의 서재
오디세이는 냄새로 움직인다
호메로스의 24권을 후각의 관점으로 다시 읽다 — 물개의 악취에서 유황의 정화까지
우리가 기억하는 오디세이는 대부분 눈으로 본 장면이다.
외눈박이 거인, 노래하는 세이렌, 마지막에 활시위를 당기는 남자. 그런데 최근에 24권을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서, 나는 계속 다른 감각에 걸려 넘어졌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냄새가 먼저 등장한다는 것이다. 어떤 악취는 사람을 도저히 그 자리에 있지 못하게 만들고, 어떤 향은 신이 만든 섬 전체를 채우며, 어떤 향은 괴물의 경계심을 풀어버린다. 심지어 어떤 냄새는 눈으로 확인하기도 전에 파국을 통보한다.
호메로스가 후각을 이렇게 자주, 그리고 이렇게 기능적으로 쓴다는 사실은 향을 업으로 삼은 사람에게는 꽤 반가운 발견이었다. 오늘은 향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디세이의 유명한 에피소드들을 후각이라는 렌즈로 다시 배열해보려는 것이다. 다만 2,800년 전의 공기를 지금의 우리가 상상해보기 위해, 몇몇 장면에는 현대 향수를 아주 조심스럽게 한 방울씩만 곁들여 두었다.
호메로스에게 냄새는 분위기가 아니다. 사건을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다.

1. 4권 — 악취를 이긴 향, 그리고 작전의 성공
첫 장면의 주인공은 오디세우스가 아니라 메넬라오스다. 트로이가 무너진 뒤에도 그는 집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한 채 이집트 앞바다에서 발이 묶여 있었다. 귀향의 방법을 아는 존재는 단 하나, 바다의 노인 프로테우스뿐이다. 문제는 그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딸 에이도테아가 기묘한 작전을 알려준다. 프로테우스가 물개 떼를 세러 뭍으로 올라올 때까지, 갓 벗긴 물개 가죽을 뒤집어쓰고 그 사이에 누워 있으라는 것.

여기서 계획을 무너뜨릴 뻔한 것이 바로 냄새였다. 원문은 이 대목을 미화하지 않는다. 바다에서 자란 물개들의 “치명적인 악취”가 사람들을 견딜 수 없게 괴롭혔다고 분명히 적는다. 그러자 에이도테아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코밑에 아주 달콤한 향의 암브로시아를 발라주고, 그 향이 짐승의 냄새를 지워버린다. 매복은 그렇게 성립한다.
나는 이 장면이 오디세이 전체에서 향의 위상을 가장 정확히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향은 사치품이 아니다. 향이 없었다면 작전이 무산되고, 메넬라오스는 귀향의 길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향은 장식이 아니라 조건이다.
이 장면을 지금 맡아본다면 힐리(Heeley) 셀 마랭(Sel Marin) — 레몬, 해조류, 베티베르, 유목(流木), 시솔트. 물개의 냄새가 아니라 그들이 누워 있던 해안의 공기를 위한 향. 줄로지스트(Zoologist) 스퀴드(Squid) — 핑크페퍼, 인센스, 먹물과 짠맛의 어코드, 앰버그리스. 더 어둡고 깊은 바다 쪽으로. |
2. 5권 —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감옥
개인적으로 24권 전체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은 5권이다. 헤르메스가 칼립소의 섬 오기기아에 도착하는 대목에서 호메로스는 장소를 설명하는 대신 거의 향을 설명한다.
동굴 화덕에서는 쪼갠 삼나무와 향나무가 타고 있고, 그 향이 섬 저편까지 퍼져 있다. 동굴 주위에는 오리나무와 미루나무, 그리고 “향기로운 사이프러스”가 우거져 있으며, 발밑에는 제비꽃과 파슬리의 부드러운 초원이 펼쳐진다. 후각·시각·촉각이 한 문단에 겹겹이 쌓인다.

그런데 이 완벽한 장소에서 오디세우스는 행복하지 않다. 그는 바닷가에 혼자 앉아 이타카 쪽을 바라보며 울고 있다. 칼립소는 그에게 사랑을 주고, 마지막에는 불멸까지 제안한다. 향기롭고 풍요롭고 시간조차 흐르지 않는 섬. 그러나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집이다.
좋은 향으로 가득한 천국이 누군가에게는 감옥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섬을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감옥”이라고 부른다. 향은 공간의 인상을 바꿀 수 있지만, 그 공간이 내가 있어야 할 자리인지까지 바꾸지는 못한다. 향을 다루는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이 문장이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진다.
이 장면을 지금 맡아본다면 딥티크(Diptyque) 탐 다오(Tam Dao) — 샌들우드, 시더, 사이프러스, 코리앤더. 오기기아를 재현한 향수는 당연히 아니지만, 나무로 둘러싸인 조용한 공간의 따뜻한 우디 톤을 떠올리기에는 이만한 기준점이 드물다. |
3. 9권 — 키클롭스를 쓰러뜨린 것은 칼이 아니었다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로 가보자. 폴리페모스. 우리는 보통 이렇게 기억한다. 오디세우스가 끝을 뾰족하게 깎은 나무로 거인의 눈을 찌르고 양 떼 밑에 매달려 탈출했다. 맞다. 그런데 그 나무를 쓸 수 있게 만든 선행 조건이 하나 있었고, 그것은 무기가 아니라 술이었다.

오디세우스는 아폴론의 사제 마론에게서 받은 포도주를 가지고 있었다. 이 술의 묘사는 유난히 구체적이다.
한 잔을 물 스무 배에 타서 마실 만큼 농도가 강했고, 그렇게 희석하고 나서도 희석용 그릇에서 “놀랍도록 달콤한 향”이 피어올라 아무도 그 잔을 물릴 수 없었다고 한다. 폴리페모스는 이 술을 맛보고 곧장 더 달라고 하고, 세 번을 받아 마신 뒤 쓰러진다. 그가 이 술을 “암브로시아와 넥타르의 시내”라고 부르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괴물조차 향의 언어로 이 술을 설명한다.
정리하면 순서는 이렇다. 향이 욕망을 만들고, 욕망이 경계를 풀고, 그 틈이 탈출을 만든다. 오디세우스가 준비한 진짜 첫 무기는 나무 말뚝이 아니라 냄새였던 셈이다.
이 장면을 지금 맡아본다면 킬리안(Kilian) 엔젤스 셰어(Angels’ Share) — 코냑을 톱노트로 두고 오크와 시나몬을 지나 통카빈과 샌들우드로 내려앉는다. 마론의 포도주와 같은 향이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다만 “향만으로 한 잔 더 마시고 싶어지는 술”이라는 상태를 이해하는 데에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
4. 12권 — 눈보다 먼저 파국을 알아챈 코
여기서부터 오디세이의 냄새는 향기롭기를 그만둔다. 트리나키아 섬, 태양신 헬리오스의 소 이야기다. 이 소들에게 손을 대면 안 된다는 경고는 이미 두 번이나 받았다. 그러나 역풍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식량이 바닥나자, 오디세우스가 잠든 사이 부하들은 결국 소를 잡는다.

잠에서 깬 오디세우스가 배로 걸어 내려온다. 그리고 그는 현장을 보기 전에 먼저 맡는다. 기름이 타는 뜨거운 냄새가 그를 감싸고, 그는 그 자리에서 신들을 향해 탄식한다. 시각적 확인은 필요 없었다. 후각이 이미 모든 것을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여기서 냄새가 묘사가 아니라 정보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후각은 인간이 가진 감각 중 가장 빠르게 기억과 정서로 연결되는 통로다. 호메로스는 그 특성을 정확히 알고 썼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문장을, 그는 냄새 하나로 대신한다. 그리고 이 선택의 대가로 오디세우스의 동료들은 전원 목숨을 잃는다.
5. 22권 — 집을 되찾는 마지막 절차, 유황
마지막은 22권이다. 오디세우스는 이타카의 궁전으로 돌아와 구혼자들을 모두 처단한다. 20년 만에 자기 집을 되찾은 순간이지만, 홀 안은 피와 죽음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그때 그가 유모 에우리클레이아에게 가장 먼저 가져오라고 시킨 것이 불과 유황이다. 그리고 홀과 집과 마당을 유황 연기로 훈증한다.

고대 지중해에서 유황 훈증은 정화 의식이자 실용적인 소독법이었다. 향수의 쾌락과는 거리가 먼, 코를 찌르는 냄새다. 그러나 나는 이 장면이 오디세이의 후각적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바다 냄새를 견디고, 향기로운 섬의 유혹을 버티고, 포도주 향을 무기로 쓰고, 구운 고기 냄새로 파국을 알아챈 사람이 마지막에 하는 일이 자기 집의 냄새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간의 냄새를 바꾸는 것은, 그 공간의 주인이 누구인지 다시 선언하는 일이다.
지금도 우리는 이사한 집에서 창을 열고, 새 침구를 빨고, 향초를 켠다. 오디세우스가 유황을 태운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남의 시간이 배어 있던 공간을 내 시간으로 덮는 것. 그것이 후각이 하는 가장 오래된 일 중 하나다.
맺으며 — 향은 기억을 이기지 못했다
다섯 장면을 나란히 놓으면 오디세이에서 냄새가 하는 일이 선명해진다. 4권에서 향은 악취를 이겨 작전을 성립시키고, 5권에서는 섬 하나를 천국처럼 만들고, 9권에서는 괴물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12권에서 냄새는 금기가 깨졌음을 통보하고, 22권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공간을 다시 사람의 집으로 되돌린다. 도구이자 유혹이자 정보이자 의식이다.
그럼에도 내게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여전히 칼립소의 섬이다. 삼나무가 타는 향, 사이프러스 숲, 제비꽃 초원, 그리고 불멸의 제안까지 있는 곳에서 오디세우스는 결국 떠난다. 그가 선택한 것은 향기로운 천국이 아니라, 함께 늙어갈 페넬로페가 있고 자기 기억이 층층이 쌓인 바위투성이 섬이었다.
오디세이를 향의 이야기로 읽고 나면 결국 한 문장이 남는다. 좋은 향은 사람을 유혹할 수 있지만, 기억이 만든 그리움까지 지우지는 못한다. 향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이건 조금 서운하면서도, 이상하게 안심이 되는 결론이다.
편집자 노트 본문에서 언급한 향수는 원전의 향을 재현한 제품이 아닙니다. 2,800년 전 장면의 감각을 오늘의 후각으로 상상해보기 위한 편집적 연결이며, 각 제품의 노트는 브랜드 공식 표기를 따랐습니다. 원전 인용은 영역본(A. T. Murray, Loeb) 기준으로 대조했습니다. 번역본에 따라 나무 이름(삼나무·향나무·시트론나무 등)과 표현이 다소 달라질 수 있으므로, 인용 시에는 사용하는 한국어 번역본을 하나 정해 다시 확인하시기를 권합니다. |
참고 출처
· 호메로스, 《오디세이》 4권 435–447행 — 에이도테아의 암브로시아와 물개의 악취. Theoi Classical Texts Library (A. T. Murray 역).
· 같은 책 5권 55–75행 — 칼립소의 동굴에서 타는 삼나무와 향나무, 향기로운 사이프러스, 제비꽃과 파슬리 초원.
· 같은 책 9권 193–215행 — 마론의 포도주, 물 스무 배 희석, 희석 그릇에서 피어오르는 향. 폴리페모스의 “암브로시아와 넥타르” 대사.
· 같은 책 12권 364–373행 — 기름 타는 냄새로 먼저 알아챈 헬리오스의 소 도살.
· 같은 책 22권 480–494행 — 불과 유황을 가져오게 해 홀과 집과 마당을 훈증하는 장면.
· Diptyque 공식 제품 페이지 — Tam Dao Eau de Parfum: Sandalwood, Cedar, Cypress, Coriander.
· Kilian Paris 공식 제품 페이지 — Angels’ Share: Cognac / Oak, Cinnamon / Tonka Bean, Sandalwood.
· James Heeley 공식 제품 페이지 — Sel Marin: Lemon, algae, Vetiver, driftwood, Sea Salt, Cedar.
· Zoologist Perfumes 공식 페이지 — Squid: Pink Pepper, Incense, ink/salty accord, Ambergris.
글 · 닥터우 (닥터우의 향기연구소) | 프라랑 매거진 · 향의 서재
프라랑 매거진 · 향의 서재
오디세이는 냄새로 움직인다
호메로스의 24권을 후각의 관점으로 다시 읽다 — 물개의 악취에서 유황의 정화까지
우리가 기억하는 오디세이는 대부분 눈으로 본 장면이다.
외눈박이 거인, 노래하는 세이렌, 마지막에 활시위를 당기는 남자. 그런데 최근에 24권을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서, 나는 계속 다른 감각에 걸려 넘어졌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냄새가 먼저 등장한다는 것이다. 어떤 악취는 사람을 도저히 그 자리에 있지 못하게 만들고, 어떤 향은 신이 만든 섬 전체를 채우며, 어떤 향은 괴물의 경계심을 풀어버린다. 심지어 어떤 냄새는 눈으로 확인하기도 전에 파국을 통보한다.
호메로스가 후각을 이렇게 자주, 그리고 이렇게 기능적으로 쓴다는 사실은 향을 업으로 삼은 사람에게는 꽤 반가운 발견이었다. 오늘은 향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디세이의 유명한 에피소드들을 후각이라는 렌즈로 다시 배열해보려는 것이다. 다만 2,800년 전의 공기를 지금의 우리가 상상해보기 위해, 몇몇 장면에는 현대 향수를 아주 조심스럽게 한 방울씩만 곁들여 두었다.
호메로스에게 냄새는 분위기가 아니다. 사건을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다.
1. 4권 — 악취를 이긴 향, 그리고 작전의 성공
첫 장면의 주인공은 오디세우스가 아니라 메넬라오스다. 트로이가 무너진 뒤에도 그는 집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한 채 이집트 앞바다에서 발이 묶여 있었다. 귀향의 방법을 아는 존재는 단 하나, 바다의 노인 프로테우스뿐이다. 문제는 그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딸 에이도테아가 기묘한 작전을 알려준다. 프로테우스가 물개 떼를 세러 뭍으로 올라올 때까지, 갓 벗긴 물개 가죽을 뒤집어쓰고 그 사이에 누워 있으라는 것.
여기서 계획을 무너뜨릴 뻔한 것이 바로 냄새였다. 원문은 이 대목을 미화하지 않는다. 바다에서 자란 물개들의 “치명적인 악취”가 사람들을 견딜 수 없게 괴롭혔다고 분명히 적는다. 그러자 에이도테아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코밑에 아주 달콤한 향의 암브로시아를 발라주고, 그 향이 짐승의 냄새를 지워버린다. 매복은 그렇게 성립한다.
나는 이 장면이 오디세이 전체에서 향의 위상을 가장 정확히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향은 사치품이 아니다. 향이 없었다면 작전이 무산되고, 메넬라오스는 귀향의 길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향은 장식이 아니라 조건이다.
이 장면을 지금 맡아본다면
힐리(Heeley) 셀 마랭(Sel Marin) — 레몬, 해조류, 베티베르, 유목(流木), 시솔트. 물개의 냄새가 아니라 그들이 누워 있던 해안의 공기를 위한 향.
줄로지스트(Zoologist) 스퀴드(Squid) — 핑크페퍼, 인센스, 먹물과 짠맛의 어코드, 앰버그리스. 더 어둡고 깊은 바다 쪽으로.
2. 5권 —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감옥
개인적으로 24권 전체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은 5권이다. 헤르메스가 칼립소의 섬 오기기아에 도착하는 대목에서 호메로스는 장소를 설명하는 대신 거의 향을 설명한다.
동굴 화덕에서는 쪼갠 삼나무와 향나무가 타고 있고, 그 향이 섬 저편까지 퍼져 있다. 동굴 주위에는 오리나무와 미루나무, 그리고 “향기로운 사이프러스”가 우거져 있으며, 발밑에는 제비꽃과 파슬리의 부드러운 초원이 펼쳐진다. 후각·시각·촉각이 한 문단에 겹겹이 쌓인다.
그런데 이 완벽한 장소에서 오디세우스는 행복하지 않다. 그는 바닷가에 혼자 앉아 이타카 쪽을 바라보며 울고 있다. 칼립소는 그에게 사랑을 주고, 마지막에는 불멸까지 제안한다. 향기롭고 풍요롭고 시간조차 흐르지 않는 섬. 그러나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집이다.
좋은 향으로 가득한 천국이 누군가에게는 감옥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섬을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감옥”이라고 부른다. 향은 공간의 인상을 바꿀 수 있지만, 그 공간이 내가 있어야 할 자리인지까지 바꾸지는 못한다. 향을 다루는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이 문장이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진다.
이 장면을 지금 맡아본다면
딥티크(Diptyque) 탐 다오(Tam Dao) — 샌들우드, 시더, 사이프러스, 코리앤더. 오기기아를 재현한 향수는 당연히 아니지만, 나무로 둘러싸인 조용한 공간의 따뜻한 우디 톤을 떠올리기에는 이만한 기준점이 드물다.
3. 9권 — 키클롭스를 쓰러뜨린 것은 칼이 아니었다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로 가보자. 폴리페모스. 우리는 보통 이렇게 기억한다. 오디세우스가 끝을 뾰족하게 깎은 나무로 거인의 눈을 찌르고 양 떼 밑에 매달려 탈출했다. 맞다. 그런데 그 나무를 쓸 수 있게 만든 선행 조건이 하나 있었고, 그것은 무기가 아니라 술이었다.
오디세우스는 아폴론의 사제 마론에게서 받은 포도주를 가지고 있었다. 이 술의 묘사는 유난히 구체적이다.
한 잔을 물 스무 배에 타서 마실 만큼 농도가 강했고, 그렇게 희석하고 나서도 희석용 그릇에서 “놀랍도록 달콤한 향”이 피어올라 아무도 그 잔을 물릴 수 없었다고 한다. 폴리페모스는 이 술을 맛보고 곧장 더 달라고 하고, 세 번을 받아 마신 뒤 쓰러진다. 그가 이 술을 “암브로시아와 넥타르의 시내”라고 부르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괴물조차 향의 언어로 이 술을 설명한다.
정리하면 순서는 이렇다. 향이 욕망을 만들고, 욕망이 경계를 풀고, 그 틈이 탈출을 만든다. 오디세우스가 준비한 진짜 첫 무기는 나무 말뚝이 아니라 냄새였던 셈이다.
이 장면을 지금 맡아본다면
킬리안(Kilian) 엔젤스 셰어(Angels’ Share) — 코냑을 톱노트로 두고 오크와 시나몬을 지나 통카빈과 샌들우드로 내려앉는다. 마론의 포도주와 같은 향이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다만 “향만으로 한 잔 더 마시고 싶어지는 술”이라는 상태를 이해하는 데에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4. 12권 — 눈보다 먼저 파국을 알아챈 코
여기서부터 오디세이의 냄새는 향기롭기를 그만둔다. 트리나키아 섬, 태양신 헬리오스의 소 이야기다. 이 소들에게 손을 대면 안 된다는 경고는 이미 두 번이나 받았다. 그러나 역풍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식량이 바닥나자, 오디세우스가 잠든 사이 부하들은 결국 소를 잡는다.
잠에서 깬 오디세우스가 배로 걸어 내려온다. 그리고 그는 현장을 보기 전에 먼저 맡는다. 기름이 타는 뜨거운 냄새가 그를 감싸고, 그는 그 자리에서 신들을 향해 탄식한다. 시각적 확인은 필요 없었다. 후각이 이미 모든 것을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여기서 냄새가 묘사가 아니라 정보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후각은 인간이 가진 감각 중 가장 빠르게 기억과 정서로 연결되는 통로다. 호메로스는 그 특성을 정확히 알고 썼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문장을, 그는 냄새 하나로 대신한다. 그리고 이 선택의 대가로 오디세우스의 동료들은 전원 목숨을 잃는다.
5. 22권 — 집을 되찾는 마지막 절차, 유황
마지막은 22권이다. 오디세우스는 이타카의 궁전으로 돌아와 구혼자들을 모두 처단한다. 20년 만에 자기 집을 되찾은 순간이지만, 홀 안은 피와 죽음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그때 그가 유모 에우리클레이아에게 가장 먼저 가져오라고 시킨 것이 불과 유황이다. 그리고 홀과 집과 마당을 유황 연기로 훈증한다.
고대 지중해에서 유황 훈증은 정화 의식이자 실용적인 소독법이었다. 향수의 쾌락과는 거리가 먼, 코를 찌르는 냄새다. 그러나 나는 이 장면이 오디세이의 후각적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바다 냄새를 견디고, 향기로운 섬의 유혹을 버티고, 포도주 향을 무기로 쓰고, 구운 고기 냄새로 파국을 알아챈 사람이 마지막에 하는 일이 자기 집의 냄새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간의 냄새를 바꾸는 것은, 그 공간의 주인이 누구인지 다시 선언하는 일이다.
지금도 우리는 이사한 집에서 창을 열고, 새 침구를 빨고, 향초를 켠다. 오디세우스가 유황을 태운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남의 시간이 배어 있던 공간을 내 시간으로 덮는 것. 그것이 후각이 하는 가장 오래된 일 중 하나다.
맺으며 — 향은 기억을 이기지 못했다
다섯 장면을 나란히 놓으면 오디세이에서 냄새가 하는 일이 선명해진다. 4권에서 향은 악취를 이겨 작전을 성립시키고, 5권에서는 섬 하나를 천국처럼 만들고, 9권에서는 괴물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12권에서 냄새는 금기가 깨졌음을 통보하고, 22권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공간을 다시 사람의 집으로 되돌린다. 도구이자 유혹이자 정보이자 의식이다.
그럼에도 내게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여전히 칼립소의 섬이다. 삼나무가 타는 향, 사이프러스 숲, 제비꽃 초원, 그리고 불멸의 제안까지 있는 곳에서 오디세우스는 결국 떠난다. 그가 선택한 것은 향기로운 천국이 아니라, 함께 늙어갈 페넬로페가 있고 자기 기억이 층층이 쌓인 바위투성이 섬이었다.
오디세이를 향의 이야기로 읽고 나면 결국 한 문장이 남는다. 좋은 향은 사람을 유혹할 수 있지만, 기억이 만든 그리움까지 지우지는 못한다. 향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이건 조금 서운하면서도, 이상하게 안심이 되는 결론이다.
편집자 노트
본문에서 언급한 향수는 원전의 향을 재현한 제품이 아닙니다. 2,800년 전 장면의 감각을 오늘의 후각으로 상상해보기 위한 편집적 연결이며, 각 제품의 노트는 브랜드 공식 표기를 따랐습니다.
원전 인용은 영역본(A. T. Murray, Loeb) 기준으로 대조했습니다. 번역본에 따라 나무 이름(삼나무·향나무·시트론나무 등)과 표현이 다소 달라질 수 있으므로, 인용 시에는 사용하는 한국어 번역본을 하나 정해 다시 확인하시기를 권합니다.
참고 출처
· 호메로스, 《오디세이》 4권 435–447행 — 에이도테아의 암브로시아와 물개의 악취. Theoi Classical Texts Library (A. T. Murray 역).
· 같은 책 5권 55–75행 — 칼립소의 동굴에서 타는 삼나무와 향나무, 향기로운 사이프러스, 제비꽃과 파슬리 초원.
· 같은 책 9권 193–215행 — 마론의 포도주, 물 스무 배 희석, 희석 그릇에서 피어오르는 향. 폴리페모스의 “암브로시아와 넥타르” 대사.
· 같은 책 12권 364–373행 — 기름 타는 냄새로 먼저 알아챈 헬리오스의 소 도살.
· 같은 책 22권 480–494행 — 불과 유황을 가져오게 해 홀과 집과 마당을 훈증하는 장면.
· Diptyque 공식 제품 페이지 — Tam Dao Eau de Parfum: Sandalwood, Cedar, Cypress, Coriander.
· Kilian Paris 공식 제품 페이지 — Angels’ Share: Cognac / Oak, Cinnamon / Tonka Bean, Sandalwood.
· James Heeley 공식 제품 페이지 — Sel Marin: Lemon, algae, Vetiver, driftwood, Sea Salt, Cedar.
· Zoologist Perfumes 공식 페이지 — Squid: Pink Pepper, Incense, ink/salty accord, Ambergris.
글 · 닥터우 (닥터우의 향기연구소) | 프라랑 매거진 · 향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