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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루체른의 카펠교와 성당들, 그리고 리기 산의 역사적 향기

프라랑
2025-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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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른의 카펠교와 성당들, 그리고 리기 산의 역사적 향기

루체른은 시간의 결이 짙게 밴 호숫가 도시이다. 이 도시에 발을 들이면, 고색창연한 다리와 첨탑들이 호수의 물결 위로 옛날 이야기를 속삭이는 듯하다. 새벽 안개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카펠교(Kapellbrücke)**와 중세의 성당들, 그리고 멀리 **리기 산(Mount Rigi)**의 실루엣까지 – 이 모든 풍경이 여행자를 서서히 과거의 서사 속으로 이끈다. 루체른의 상징인 카펠교와 그 내부에 그려진 그림들, 도시의 신앙을 지켜온 고풍스러운 성당들, 그리고 ‘산들의 여왕’이라 불리는 리기 산에 얽힌 이야기들이 한 편의 역사 여행기로 펼쳐진다.


카펠교 – 물 위에 떠있는 역사화 갤러리

카펠교는 루체른 구시가를 가로질러 로이스(Reuss) 강 위에 놓인 목조 다리로, 그 자체로 스위스의 한 시대를 상징하는 살아있는 유물이다. 14세기 중엽인 1365년경에 지어졌다고 전해지는 이 다리는 원래 길이가 270미터가 넘었고, 도시 요새의 일부로서 강을 건너 남쪽에서의 침입을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 다리 중간에는 팔각형의 고색 창연한 워서터름(Wasserturm, 물의 탑)이 우뚝 서 있다. 이 34.5미터 높이의 탑은 다리보다도 약 30년 앞서 지어진 것으로, 한때 감옥과 고문실, 시 기록보관소와 금고로까지 활용되었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카펠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지붕 덮인 목조 다리로 남아 있으며, 오늘날 루체른을 대표하는 상징이자 스위스의 주요 관광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이 목조 다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다리 내부 지붕 아래에 걸려 있는 삼각형의 그림들이다. 다리의 처마 밑을 따라 줄지어 있는 삼각형 패널들은 마치 야외 미술관처럼 루체른의 전설과 역사를 담은 연속화로 여행객을 맞이한다. 17세기 반종교개혁 시대에 루체른 시 당국은 신앙과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이 그림들을 의뢰하였고, 루체른 출신의 가톨릭 화가 한스 하인리히 왜그만(Hans Heinrich Wägmann)이 주요 작품들을 그렸다. 목재로 만든 그림 패널은 모두 158점에 이르렀으며, 주로 가문비나무 널빤지 위에 채색되었다. 각각의 그림 하단에는 2~4행 가량의 설명 구절이 적혀 있어 그림의 주제를 해설해 주었는데, 이는 당대에 시민들이 이 다리를 건너며 자연스럽게 도시의 역사와 가톨릭 신앙의 가르침을 되새기도록 한 장치였다. 사실상 17세기의 이 그림들은 종교개혁 물결 속 가톨릭 신앙을 수호하려 했던 루체른의 의지를 나타낸 일종의 시각 선전물이기도 했다. 시 의회 의원들이 그림 제작 비용을 후원하면 자신의 가문 문장을 해당 패널 하단에 그려넣을 특권을 얻었고, 그렇게 시민 공동체와 종교적 서사가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탄생한 것이다.

카펠교의 삼각 그림들은 주제 면에서도 다채롭고 극적이다. 루체른의 수호성인인 성 레오데가르(St. Leodegar)와 성 마우리티우스(St. Maurice)의 생애에 얽힌 전설부터, 스위스와 루체른의 역사적 사건, 심지어 죽음의 무도(Danse Macabre)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를테면 어느 패널에는 성 레오데가르의 순교 장면이 그려져 있다. 성인은 눈이 멀어지는 고통을 겪은 끝에 신앙을 지켰다고 전해지는데, 그림 속에서 머리가 잘린 성직자와 그 앞에 경배하는 병사들의 모습이 처연하게 묘사되어 있다. 또 다른 그림은 14세기 “루체른의 대학살의 밤” 전설을 담고 있다. 1343년 7월 어느 밤, 합스부르크가 연루된 세력이 루체른을 급습하려 했으나, 한 영민한 소년이 그 음모를 눈치채 연맹군을 구했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그림들은 신앙적 주제뿐 아니라 도시를 구한 영웅담 등 세속사까지 아우르며, 루체른 사람들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한 폭 한 폭에 새겨놓았다. 그밖에도 니트발덴의 용사를 그린 패널에서는, 살인죄로 추방된 용감한 남자가 용을 퇴치하고 다시 시민권을 회복하려다 결국 용의 피에 중독되어 숨지는 비극적 전설이 펼쳐지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매년 3월 25일에 열리던 무제크 행렬(Musegg procession) 같은 종교 행사 장면도 보이는데, 이는 성모 마리아를 기리는 루체른 최대의 가톨릭 축제를 묘사한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그림 주제들은 삼각형 틀에 맞게 구성되어, 그림 하단에 주요 장면을 그리고 꼭짓점 부근에는 먼 배경이나 건축물을 배치하는 등 독특한 구성미를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이 소중한 그림들의 상당수는 1993년 8월 18일 발생한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한밤중에 일어난 화마는 순식간에 목조 다리를 집어삼켰고, 다리에 남아있던 147점의 옛 그림 중 2/3가량이 불타버렸다. 화재 이후 그을음 속에서 47점의 패널 조각들이 수습되었으나, 이 중 30점만이 온전하게 복원되어 다시 교각에 걸렸다. 다행히도 루체른 시민들의 성원과 노력으로 다리는 이듬해 1994년 4월, 불과 8개월여 만에 원래 모습으로 복원되어 재개장했다. 지금도 카펠교를 건널 때면, 군데군데 빈 틀이나 그을음 자국이 남은 패널을 볼 수 있다. 그것들은 상실된 그림들에 대한 기억이자, 이 다리가 겪은 시련의 흔적이다. 다리 위를 거닐며 고개를 들어 남아있는 그림들을 바라보면, 옛 성인들의 순교와 전쟁의 비극, 그리고 기적 같은 구원 이야기가 목조 지붕 아래서 속삭이는 듯하다. 흐르는 강물과 나무 기둥의 은은한 향기 속에서, 여행자는 수 세기를 건너온 루체른의 혼과 마주하게 된다.




호프교회 – 르네상스 시대의 신앙과 예술

카펠교를 지나 도심 언덕배기로 올라서면, 두 개의 뾰족한 탑이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웅장한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호프교회(Hofkirche), 공식 명칭으로 성 레오데가르 교회다. 이 성당은 루체른의 옛 수도원 자리에 서 있으며, 그 역사는 무려 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이곳에는 735년경 창건된 작은 수도원이 있었고, 12세기에는 알자스의 뮈르바흐 수도원에 속한 성 마우리티우스(Saint Maurice) 수도원으로 발전하였다. 중세를 지나 15세기에 루체른 시민들이 이 수도원을 장악하여 세속 성직자들이 봉사하는 콜레기움 교회로 전환하였고, 종교개혁기에도 루체른이 가톨릭 신앙의 보루가 됨에 따라 한동안 교황청 대사가 이 성당을 좌석 성당처럼 사용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호프교회 건물은 17세기 서늘한 르네상스 양식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1633년 발생한 큰 화재로 기존의 고딕 양식 교회가 대부분 소실된 후, 1633년부터 1639년 사이에 새로운 성당이 재건되었다. 이때 과거 교회의 일부였던 두 개의 종탑과 성모 제대, 그리고 몇몇 귀중한 성물들만이 화마를 피해 살아남아 새로운 건축에 통합되었다고 전해진다. 그 결과 완성된 호프교회는 독일 후기 르네상스 양식과 남겨진 고딕 요소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독특한 외관을 자랑한다. 우아한 쌍둥이 종탑은 옛 시대의 잔재를 간직한 채, 그 아래의 본당 건물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을 받아들여 지어졌다. 이 성당은 “스위스 르네상스 교회 건축의 가장 중요한 실례”로 손꼽힐 만큼 건축사적으로도 큰 의의를 지닌다. 특히 1610년대~30년대에 유럽을 휩쓴 30년전쟁 시기에 알프스 이북 지역에서 드물게 새로 건축된 가톨릭 성당이라는 점에서, 가톨릭 신앙 수호의 상징으로도 여겨진다.

호프교회의 내부로 들어서면, 한층 엄숙하면서도 화려한 분위기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흰색으로 석회를 바른 석조 천장과 벽면은 르네상스 양식의 단아함을 풍기고, 곳곳에 황금으로 장식된 제대와 성상들이 빛난다. 남쪽 측랑의 나무 좌석들은 당시의 부유한 신자를 위한 자리로서 화려한 조각이 새겨진 반면, 북쪽 측랑에는 보다 소박한 일반 신자의 좌석이 배치되어 있어, 한 공간 안에 계층에 따른 대비가 드러나는 것도 흥미롭다. 중앙 회중석을 바라보는 기둥에는 16세기 루체른의 정치가 루트비히 피퍼 폰 알티쇼펜(Ludwig Pfyffer von Altishofen)을 기리는 동판이 걸려 있다. 그는 유럽 각지에서 용병으로 활약하며 막대한 부를 쌓은 뒤 고향에 예수회(Jesuit)를 초청해, 종교개혁 이후 루체른에 가톨릭 역(逆)개혁의 바람을 불러온 인물이다. 그의 노력 덕분에 17세기 루체른은 예수회 학교와 바로크식 예수회 성당(현재의 예수교회 Jesuitenkirche)까지 세워지며 가톨릭 문화의 중심지로 번영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떠올리며 성당 내부를 둘러보면, 부유한 후원자들의 예술 후원과 신앙심이 어떻게 성당 곳곳에 스며있는지 새삼 느껴진다.

이 성당이 간직한 예술적 보물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호프교회는 스위스에서 손꼽히는 성물 보관실을 보유하고 있는데, 1215세기에 제작된 십자가형 성물함과 은제 미사 경본 표지부터, 1476년 뮈르텐 전투에서 스위스 연합군이 부르고뉴군을 상대로 거둔 승리 후 획득한 황금 성작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가치가 큰 성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1718세기 성당 재건 이후 마련된 은도금 성유물함들과 자수 제의들, 그리고 다섯 개의 실물 크기 은제 성인 흉상들은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성당 후면에는 1640년에 설치된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자리하고 있다. 이 오르간은 제작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고 무거운 파이프를 보유했다고 전해지며(10.7미터 높이에 383kg에 달하는 금속 파이프), 총 7,374개의 파이프가 내뿜는 장엄한 음색은 이 성당만의 특별한 음악적 유산이다. 지금도 미사나 공연 때 울려퍼지는 오르간 소리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이어져온 영성의 숨결을 현재로 되살리는 듯하다. 호프교회의 정면 계단을 내려서 밖으로 나오면, 투명한 루체른 호수 너머로 바라보이는 리기 산과 필라투스 산이 성당의 쌍둥이 첨탑을 배경으로 장엄한 파노라마를 이루고 있다. 이 풍경 속에서 여행자는 과거와 현재, 인간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진 경외로운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된다.


프란치스카너 교회 – 고요한 고딕의 숨결

루체른 구시가의 소박한 골목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번화한 상점가 뒤편으로 한적하고 경건한 분위기의 오래된 성당이 나타난다. 프란치스카너 교회(Franziskanerkirche), 즉 프란치스코 수도회 교회로 불리는 이 곳은, 공식적으로는 **성모 교회(Church of St. Mary)**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13세기 후반인 1270년경부터 1280년 사이에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이 이 자리에 수도원을 짓고 수도자들의 예배당을 세웠는데, 그 건물이 바로 현존하는 교회의 기원이다.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청빈과 겸손을 중시하는 탁발승들의 공동체인 만큼, 이 교회의 건축도 화려함을 피하고 소박한 고딕 양식을 따랐다. 외관에는 높이 솟은 첨탑이나 익랑(transept)이 없고, 하나의 긴 네이브(nave)와 그 끝의 제단으로 구성된 단순한 구조가 특징적이다. 초기 고딕 양식이 막 형성되던 시기의 건축물답게 벽면은 매끄럽고 장식이 절제되어 있으며, 수평과 수직선을 강조한 깔끔한 실루엣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교회 내부로 들어서면 은은한 옛 향기가 감도는 가운데 천장 높은 곳에서 쏟아지는 빛이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프란치스카너 교회의 내부는 겉모습의 수수함과 달리 시대를 거치며 다양한 예술 요소가 축적되어 있다. 중앙 신랑의 벽면을 둘러보면 커다란 깃발 도상이 줄지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중세 말 젬파흐 전투(1386) 등 루체른이 참가했던 전쟁들에서 노획한 전리품 깃발들을 묘사한 것이다. 원래 이 자리에 실제 전쟁에서 빼앗은 적군의 깃발들을 걸어놓았었다고 전하나, 세월이 흐르며 원물은 손상되고 현재는 그 모습을 본뜬 회화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깃발 그림들은 조용한 성당 안에 옛 전투의 기억을 아로새기며, 한때 강대국 합스부르크를 상대로 승리를 일구었던 루체른 용사들의 혼을 기리고 있다. 제대 쪽으로 눈을 돌리면, 13세기에 제작된 대리석 제단이 우아한 아름다움으로 자리잡고 있고 그 위에는 1736년 작가 렌바르트(Renward)의 작품인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목자들” 유화가 걸려 있어 성탄의 경이를 전한다. 천장을 올려다보면 성 프란치스코가 천상에서 영광을 누리는 장면을 묘사한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청빈의 성인이 하늘에서 내려보내는 평화와 축복을 상징하는 듯하다.

이 교회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예술품 중 하나는 남쪽 벽면에 설치된 화려한 목조 설교단(설교대)이다. 17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이 목각 설교단은 매너리즘 양식의 걸작으로, 조각가 카스파르 튀펠(Kaspar Tyuffel)과 한스-울리히 레버(Hans-Ulrich Reber)가 빚어낸 정교한 목조 장식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포도덩굴과 성경 장면, 천사와 설교자 조각이 어우러진 이 설교단은 스위스 전체를 통틀어 가장 정교하게 장식된 것으로 평가받을 만큼 예술성이 뛰어나다. 설교단 상단에는 울려퍼지는 말씀을 상징하듯 천사가 나팔을 부는 형상이 있고, 계단 난간을 따라서는 성경의 지혜를 상징하는 무늬들이 촘촘히 조각되어 있다. 이처럼 소박한 탁발수도회의 교회 안에 의외로 화려한 예술품이 공존하는 모습은, 세월이 흐르며 여러 차례의 보수와 증축을 거치는 사이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적 요소들이 겹겹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16세기에 이 교회의 부속 성 앤토니 경당이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축되었고, 17~18세기에는 본당 곳곳에 바로크 및 로코코 양식의 제단과 장식이 더해졌다. 그럼에도 프란치스카너 교회는 전반적으로 과한 부축임 없이 고딕적 단순미와 근면한 수도자들의 정신을 간직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적막한 오후, 이 성당에 들어 홀로 나무 의자에 앉으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쏟아지는 채광 아래 과거 순례자들과 가난한 이들, 수도자들이 함께 기도드리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겸허한 아름다움 속에서 오랜 세월의 숨결이 들려오는 듯한 프란치스카너 교회는 루체른 여행자의 마음에 잔잔한 평화를 선사한다.


리기 산 – ‘산들의 여왕’이 들려주는 이야기

루체른 호반의 풍경을 바라볼 때, 시야 한켠에 너른 자태로 자리한 산이 있으니, 바로 **리기 산(Rigi)**이다. 해발 고도는 1,798미터로 알프스의 거봉들에 비하면 아담한 편이지만, 리기 산이야말로 중앙스위스의 진짜 보물이라 불린다. 그 별칭이 **“산들의 여왕”**일 정도로 예로부터 수려한 경관과 온화한 모습으로 사랑받아 온 산이다. 리기 산이라는 이름의 기원에 대해 오래전 사람들은 라틴어 레지나 몽티움(Regina Montium), 즉 “산들의 여왕”에서 왔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고대 독일어로 줄무늬나 계단 모양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름의 진위야 어찌 되었건, 15세기 경에 이미 한 인문학자가 이 산을 ‘여왕’에 비유한 이래 그 낭만적 별호는 널리 퍼졌고 여행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리기 산은 사방이 호수로 둘러싸여 있는데, 루체른 호수, 추크 호수, 라우에르츠 호수 세 개의 호수가 산자락을 감싸 안고 있다. 산 정상에 오르면 멀리는 빙설을 인 처럼 하얗게 빛나는 알프스의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서고, 발 아래로는 호수와 초원이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이러한 아름다움 덕분에 리기 산은 19세기 유럽 관광의 황금기에 가장 주목받은 여행지 중 하나가 되었다. 스위스가 근대 관광의 선구적 무대가 되던 당시, 리기 산은 혁신적인 교통 기술 도입의 현장이기도 했다. 1871년 5월 21일, 리기 산 자락의 비츠나우(Vitznau) 마을에서 증기 기관차가 천천히 산비탈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유럽 최초의 산악 철도의 역사적인 출발이었다. 톱니바퀴로 레일을 물고 가파른 경사를 오르는 이 혁신적인 **리기 산악철도(Vitznau-Rigi-Bahn)**는 개통 직후부터 유럽 각국의 여행객들을 리기 정상으로 실어날랐다. 1873년에는 반대편에서 아르트-리기(Arth-Rigi) 철도가 착공되어 1875년에 완공됨으로써, 리기 산은 양쪽 사면에서 모두 기차로 오를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리기 산은 1870년대에만도 연간 수십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갈 정도로 대유행을 누렸다. 빅토리아 시대의 신사숙녀들은 증기선으로 루체른 호수를 건너고, 산기슭 마을에서 말이나 가마를 이용하거나 새로 놓인 톱니바퀴 기차를 타고 정상에 올라 탁 트인 경관을 즐겼다.

당시 리기 산을 찾은 유명인사들의 발길도 역사 속 일화로 남아 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1868년 신분을 숨기고 스위스를 여행하던 중 리기 산에 올랐다. 그 해 8월, 이미 40대 중반의 나이였던 여왕은 쿠스낙트(Küssnacht)에서부터 말을 타고 리기 산의 전망대인 케인첼리(Känzeli)까지 힘겹게 올라갔다고 전해진다. 정상에서 호수를 굽어보며 감탄한 그녀는 일기장에 짤막하게 “We are amused! (참으로 즐겁구나!)”라고 남겼는데, 이는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그녀가 스스로 농담삼아 적은 기록으로도 유명하다. 몇 년 후인 1879년에는 미국의 위트 넘치는 작가 마크 트웨인도 리기를 방문했다. 그는 리기 산 등정을 소재로 유머 가득한 기행문 「악어를 탄 기차 여행」을 남겨 이 산의 명성을 더욱 널리 알렸다. 트웨인은 특유의 입담으로, 이른 새벽 리기 산 정상에서 본 일출 광경을 두고 “태양이 알프스 산맥을 향해 황금빛 강물을 쏟아붓는 장엄한 순간”이라 묘사하며 감탄했다. 그의 글은 당대 독자들에게 리기 산의 경치를 생생히 전해주어, 수많은 이들이 그 발자취를 따라 스위스로 몰려들게 만들었다.

리기 산 정상부에는 19세기 말 호황기에 지어진 산장과 호텔들의 유적도 남아 있다. 1870년대에 정상부 리기 쿨름(Kulm)에는 300개 객실에 호화 식당과 응접실을 갖춘 대형 호텔이 문을 열었고, 중턱의 리기 칼트바드(Kaltbad)에는 온천 휴양지가 조성되어 귀족들과 부유층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리기 산은 한 시즌에 1000마리가 넘는 말과 수백 명의 가마꾼들이 관광객을 실어나를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대전과 경제공황의 격동기를 거치며 한때 그 영광이 잦아들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현대식 편의시설과 함께 옛 산악열차가 전기 동력으로 변모하여 여전히 정상까지 관광객을 싣고 다닌다. 2021년에는 유럽 최초의 산악철도 개통 150주년을 맞아 리기 철도가 성대한 기념행사를 열기도 했다.


맑은 날 리기 산 정상에 서면, 동틀 무렵 하늘을 물들이는 장관이나 노을에 불타는 저녁 하늘이 여행자의 가슴에 잊지 못할 추억을 새긴다. 하얀 눈으로 덮인 겨울에 오르면, 붉은 스위스 국기가 눈부신 설원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펄럭이며 한 폭의 그림엽서 같은 풍경을 펼쳐낸다. 리기 산은 그야말로 문화와 역사의 무대이기도 하다. 스위스의 국민화가들이 이 산을 배경으로 많은 작품을 남겼고, 음악가들은 산에서 들은 폭풍과 새소리로 영감을 받아 곡을 쓰기도 했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산 중턱의 호수에서는 선녀들이 달빛 아래 춤을 추었다고도 전해진다. 이런 신화적 상상 때문일까, 산정에는 지금도 ‘선녀의 채플’이라는 작은 예배당이 있어 지나가는 이들의 미소를 자아낸다.



호반의 도시 루체른에서 시작된 여정이 어느덧 리기 산 정상에 닿으면, 발 아래로 루체른 시내와 호수가 아스라이 보인다. 저 멀리 카펠교의 붉은 지붕도 실처럼 가늘게 이어져 있는 것이 보일 듯 말 듯 하다. 그 다리 위의 그림들이 품고 있던 성인들의 신앙과 도시의 추억, 호프교회와 프란치스카너 교회의 종소리가 들려주던 경건한 선율, 그리고 산 정상의 바람이 전하는 자연의 속삭임까지 –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여행자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루체른의 풍경과 이야기들은 마치 한 편의 서정시처럼 눈앞에 전개되었다가, 이내 찬란한 기억이 되어 가슴 속에 새겨진다. 루체른을 떠나는 길, 호수 위로 노을이 지면 도시와 산들은 황금빛에 물들고, 마치 “행복한 삶과 굳건한 신앙이 강한 도시를 만든다”는 옛 격언이 속삭이듯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그렇게 여행자는 루체른에서의 시간 여행을 마무리하며, 중세와 근대를 아우른 역사 속에서 오늘의 감동을 품고 다음 여정을 향해 나아간다.


참고 자료: 루체른 카펠교 및 회화 설명, 호프교회 역사 및 건축, 프란치스카너 교회 건축 및 예술품, 리기 산 관광사 및 문화 등.


 edited by 프라랑